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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구미

구미 문화재 가까이 보기② 시대를 초월한 가치

by 스마트시티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은 비단 풀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지켜 나가야할 문화재 역시 보면 볼수록 귀중한 존재인데요. 구미 지역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전환기 마다 중심이 되어온 곳이기에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문화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지척에 있는 문화재를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스마트시티에서 지난달에 이어 구미 지역의 문화재를 만나고 왔습니다.

 

구미 삼성전자 2사업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문화재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위치해 있으나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인동입석입니다. 이 두 구의 입석은 무려 선사시대의 기념물인데요. ‘괘혜암(掛鞋岩)’이라 새겨져 있는 입석은 높이 4.3m, 둘레 5m의 크기를 자랑하며, 조선 선조 17년(1587) 인동 현감으로 부임한 이등림의 청백한 공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는 임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한 여종이 짚신 한 켤레를 받은 사실을 알고, 그것마저도 관물이라며 이 바위에 걸어두고 떠났다고 하는데요. 그때부터 ‘짚신을 걸어둔 바위’, 괘혜암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괘혜암 바로 옆에 세워진 또 하나의 입석은 ‘출포암(出捕岩)’이라 불리는데요. 높이 2.5m, 너비 73cm, 아래 밑동의 둘레는 2.5m입니다. 인동 관아가 설치될 무렵 고을의 풍수지리를 이롭게 하고, 도둑을 잡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하는데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대정기념비(大正紀念碑)라 새긴 것을 광복 이후 다시 대한민국건국기념이라 새긴 굴곡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이 두 입석은 우리 조상들의 미담을 담고 있으면서, 역사의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물로서 그 가치가 있습니다.
문화재 : 인동입석(지방문화재자료 제184호)
위치 : 진평동 627-4(구미 삼성전자 2사업장에서 진평길 방향으로, 진평교를 건너 바로 앞)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설립된 관학국립교육기관 향교. 인동향교는 고려 공양왕 시대에 처음 지은 것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 황상동 어운산 자락에 있다가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선조 34년(1601) 안태동 옥산 북쪽에 다시 지어졌으나, 지형이 좋지 않아 지반이 무너지는 일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인조 12년(1634) 옥산 서쪽으로 이건하고, 1988년 도심 확장으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인데요.


향교는 앞쪽과 뒤쪽으로 공간이 분리됩니다. 앞쪽은 공부하는 공간으로, 뒤쪽은 공자 및 선현을 향사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는데요. 경내에는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삼문, 대성전, 명륜당 등이 있으며, 대성전 앞의 좌우 동무와 서무는 건물이 노후하여 철거되었고,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향교의 석전제(성인과 선조들에게 지내는 제사)는 원래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하나, 이곳에서는 공자의 탄생일인 음력 8월 27일, 한 차례만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향교 정문 좌우의 비석들인데요. 인동부사김응조거사비, 어사이만식영세불망비 등 인동 각처에 흩어져 있던 역대 현감과 부사의 선정비, 불망비, 거사비 등을 한자리에 모아 둔 것입니다.
문화재 : 인동향교 대성전(지방문화재자료 제20호)
위치 : 구미시 수출대로 333(임수동, 인동방향으로 구미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쪽)

 

인동향교가 조선시대 국립교육기관이라면, 동락서원은 조선시대의 지방 사립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동향교 바로 아래, 낙동강변에 자리한 동락서원은 여헌 장현광(1554~163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효종 6년(1665) 제자들이 건립한 서원인데요. 장현광은 인조 때의 학자로 이황 등과 함께 성리학에 정통한 산림(山林)이었으며, 벼슬보다 학문에 뜻을 두고 말년에는 후학 양성에 힘쓴 진정한 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락서원은 숙종 2년(1676)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습니다. 이후 1932년에 사당을, 1971년에 부속건물을 복구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는데요. 서원 내에는 강당인 중정당을 비롯해 윤회재, 근집재, 문루인 준도문으로 구성된 강학 공간을 두었고, 뒤쪽에는 내삼문, 사당인 경덕사 등 제향공간을 배치했습니다. 중심 건물인 강당은 모두 6칸으로 가운데는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는 온돌방을 배열한 보편적인 구성을 보입니다. 현재 서원 내에는 여헌 선생의 유물인 가죽신, 삿갓, 우의대 등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동락서원을 방문하면 이곳을 지키고 있는 배롱나무와 은행나무를 눈여겨 봐야하는데요. 나무껍질 없이 매끈한 모습이 청렴결백한 선비를 상징한다 해 서원이나 정자에 많이 심었다고 하는 반가운 배롱나무를 이곳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원 앞에는 보호수로 지정될 만큼 오래된 거목의 은행나무가 서 있어, 가을날 방문하면 장관을 선사합니다.
Tip. 구미시에서는 2014년부터 ‘동락서원 나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4월부터 10월까지 동락서원에서 선비문화 체험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http://blog.naver.com/kmuseum9501/220634707831)
문화재 : 동락서원 강당(지방문화재자료 제21호)
위치 : 구미시 수출대로 327-13(임수동, 인동향교 바로 밑, 구미대교 강 아랫길에 위치)

 

참고문헌
<구미-선산 지역 문화의 복합성 구미문화재탐방> 전정중 지음, 한국학술정보
<구미·김천의 문화유적 알기> 김환대 엮음, 한국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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